페인팅 관련 주절주절


가끔 가다가 페인팅 관련해서 메일을 받는다.

방법을 알려달라거나 팔라거나 혹은 달라거나(!)  종종 영문의 메일이 오기도 하는데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중에 페인팅 의뢰 메일을 받으면 자주 오는 내용도 아니기에 호기심이 생긴다.

면식도 없는 사람이 나 따위를 어떻게 알았을까? 뭐하는 사람인가... 돈은 많나? 등등등

그리곤 혼자 여러가지 잡다한 생각을 하다가 결국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

이유는, 금전문제에서 부터 마찰이 생기고 이해시키기 위한 부연설명이 들어가야 할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내 기준에서 최선을 다해 칠하는 단품 모델의 경우 적게는 3일 길게는 일주일 이상 걸리는데 이 기간은 먹고 자는 시간 빼고 하루에 12시간 정도  붙잡고 있을때 이야기다.

그럼 어디 예를 들어보자. 4일 걸린다고 치면 48시간 이고 최저임금은 시간당 4000원이다. 그럼? 192000원 나온다.

사지 멀쩡하면 아무나 할수 있는 알바를 그 시간동안 해도 최소 20만원 돈이 나온다는 이야기.

하물며 기술이 동반되는 (약간의 재료비도) 이 경우는 어떻겠는가. 의뢰자가 동의한다는 조건 하에 결국 부르는게 값인데, 과연 의뢰자가 이런 속사정을 알고 문의 했을까?

(참고로 외국의 탑페인터 들의 단품 의뢰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페인팅 등급별 가격을 세분화 하긴 하지만 종종 꼴 같지 않은 페인팅 하고도 엄청난 가격에 잘만 팔린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국내에 모형 관련 취미, 워해머등의 미니어처 게임을 취미로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28미리 미니어처 페인팅에 대한 개념이 많이 부족하다.

(요기서 개념은 미니어처게임 혹은 게임말의 측면에서가 아니다. 28미리로 불리우는 미니어처 페인팅 장르에 대한 이야기다.)

그도 그럴것이 뭐 언제 봤어야지 이런걸. 설령 모델도 많이 칠했고 게임도 오래 해봤다 쳐도 이걸 게임말이 아닌 하나의 모형의 장르로써 붓질 스킬, 기법에 대해 직접 시도하며 연구한 사람이 있나... 붓 콘트롤도 안되면서 어줍잖게 기법부터 흉내내는 부류 말고.

또 프라모델 하던 사람이라 해도 대부분이 에어브러쉬 기반이고 세밀한 붓질 하나로 승부를 보는 장르는 히스토리컬이나 미리터리 인형쪽이 있을텐데 붓질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은 뭘 칠해도 잘 하겠지만 28미리 그리고 판타지/SF장르인 이 분야에선 나름의 먹어주는 스타일 이란게 있기에 한두번 칠해본다고 이쪽 특유의 스타일까지 해석할 순 없을 것이다.

프라모델 하던 분들이 쉽네~ 하면서 칠한 28미리 미니어처를 보면 본인들이나 주변에선 잘했다 할진 모르겠으나 10년간 이 분야만 파온(그렇다고 실력이 그 기간에 걸맞진 않지만) 내 눈에는 영 아니올시다 인데. 반대로 생각하면 기분 나쁠게 전혀 없다. 나도 기타 다른 프라모델 장르의 평가를 어느정돈 할수 있다 근데 그 분야를 오래 접한 사람들만이 아는 핵심 포인트는 전혀 모르니까.

물론 각자가 좋아하는 분야와 부분에서 매력을 느끼고 즐기면 되는거라 그렇게 해야 할 이유도 강요할 생각도 없지만 28미리 미니어처를 모형 작품으로써 볼줄 아는 눈은 게임 많이 했다고, 사진 많이 봤다고 프라모델 한다고 생기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내 워해머 입문 초창기 상황을 말해보자면 기존 모임에 있던 분들은 게임으로써 워해머를 하던 분들이라 모형으로써 접근하여 칠하는 날 보고 다들 잘 칠한다고 치켜 세워 줬었고 분위기를 타서 난 내가 진짜 잘 칠하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근데 이것 저것 칠하며 점차 알게되는 것이 늘어나며 내 수준을 알게 되었다. 그 분들이 추켜세워 줬던 것은 당연히 자신들 눈에는 잘 칠한것 처럼 보이니까, 또 내가 가끔 연습삼아 모델도 칠해줬었으니까 단지 그런 이유의 덕담 같은 것이지 결코 냉정한 평가라고는 할수 없었다.

그런 환상 속에 살면 현실에 안주하려 하고 자신의 미숙한 실력을 합리화 시키게 된다. 다행인것은 비교적 빨리 현실을 인정했고 비교대상과 목표를 크게 잡았을때 부터 실력이 많이 늘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현재의 내가 잘 칠한다는 소리가 절대 아니다. 특히 어설픈 미술 전공이라 색 쓰는 것에 대해 배울것도 많고. 지금 내 실력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작은거 칠하는데 시간이 그렇게 걸릴 이유가 모가 있냐고, 건담이나 레진 킷등의 빅스케일 모형도 더 빨리 칠하고 싸게 받는 사람들도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비유적인 표현에서의 코딱지가 아니라 리얼 코딱지 만한 디테일에 0000호 세필로 그려가며 그라데이션을 넣고 앉아 있는 편집증 수준의 마이크로 페인팅인데 오래 걸릴수 밖에. 칠하는 과정에서의 스트레스도 장난 아니고.

많이들 알기도 하지만  쿨미니오어낫 이란 싸이트에 가보면 이 분야의 끝내주는 페인터들이 모여있는데 그 사람들은 그 실력만큼 무지 빨리 칠할거 같지만 반대로 더 오래 걸린다.  

손톱만한 면적에 1시간을 줄테니 칠하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1분만에 크게 붓질 한번 하고 할게 없어 멍때리겠지만 이 사람들은  1시간 내내 붙잡고 뭔가를 열심히 칠하고 있을 거다.

아는 만큼 신경쓸 것이 많아지고 오래걸리며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그런 놀라운 작품들이다.

또 언급하면 내가 그 사람들의 사정에 빗댈 만큼의 실력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런 메카니즘을 이해하고 따라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잡담식으로 쓴 글인데 필요 이상으로 심각해진 것 같다. 근데 이런게 내 솔직한 심정이고 가끔 주절 거리고 싶을때가 있으니까.

by calgar | 2009/09/14 16:38 | ● Miscellaneous | 트랙백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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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토나이투 at 2009/09/14 17:09
그 많은 비용에 '잘칠해진 모델로 구경하는 사람도 즐거운 게임만들기'라는 가치도 들어가면 금전적인 가격은 훨씬 뛰겠죠

그래도 모델을 만든다는 뿌듯함 때문에 부족한 실력에도 모델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보기에 칼가님은 영웅이십니다
Commented by calgar at 2009/09/15 05:16
같은 공을 두고도 축구를 또는 배구를 하며 노는 사람들이 있듯이

각자가 좋아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그런것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이 나와 다른 놀이를 한다해서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또 존중하고 있고요.

저 역시 존중은 아니더라도 이런 놀이를 한다고 무시 받지만 않았으면 하는 희망을 합니다.
Commented by sschh at 2009/09/14 18:05
E-bay에 경매를 붙여 보시는건 어떠신지??? 근대 설마 만들어 달라고 한뒤에, 가격들으면 화내는 사람도 있는 겁니까?(...).
Commented by calgar at 2009/09/15 05:16

경매등을 생각해보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당장 팔 물건도, 남에게 칠해줄 시간도, 가장 중요한 실력도 없거든요.^^

그리고 가격을 듣고 화내는 경우가 있다기 보다는요.

28미리 미니어처 더 크게는 모형 페인팅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서로 맘상하기 전에 가만히 있자는 생각도 들었었어요.
Commented by Blein at 2009/09/14 18:05
칼가님께서는 제가 페인팅 처음 시작할 때부터 엄청난 자극이었죠.
지금도 칼가님 모델만 보면 그저 감탄에 감탄..
칼가님은 정말 제 영웅이십니다 ㅋ
Commented by calgar at 2009/09/15 05:16
제 주제에 다른 분께 자극의 촉매가 되었다 생각하니 부끄럽습니다.

제가 칠한 결과물들을 좋게 봐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고요.

하지만 잘 칠한다는 소리에 어울리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저에게는 너무나 요원한 일 같습니다.
Commented by Ra-Cass at 2009/09/14 18:38
페인팅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단지 어떻게 색을 조합해야 하며, 레이어링을 어느 부위에 넣어줘야 하는지 몰라서 어려울 뿐입니다.
Commented by calgar at 2009/09/15 05:17
언급하신 요소들도 페인팅이란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간단히, 적당히 그리고 게임을 위한 페인팅은 쉽습니다.

하지만 게임말이 아닌 하나의 작품으로써, 취미일 뿐이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두고 칠하고자 한다면 페인팅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LoneTiger at 2009/09/14 21:55
동감이 가는 말씀이십니다.
Commented by calgar at 2009/09/15 05:17
글을 잘 못쓰다보니 하고 싶던 말을 미루고 미루다가 두서없는 글을 남기게 되었는데요.

동감해주시는 분이 계시다니 조금 안심이 됩니다.
Commented by 아리아 at 2009/09/15 02:08
저도 이쪽이나 히스토릭쪽은 아니지고 SF쪽 의뢰를 받아 작업을 꽤 했는데 국내시장 가격은 정말 답이 안나옵니다. 차라리 그시간에 알바를 하는게 백배 낫다는게 맞습니다. 그나마 모형을 조금이나마 만들어본 사람만 현재 시세가 낮다는걸 이해하더군요.
그리고 저도 모형으로서 워해머를 작업하고있습니다. 칼가님의 작품들이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됬는지 모릅니다. 워해머 피겨를 어떻게 칠해야하는지 감도 못잡았을 때 정말 단비 같았습니다. 히스토릭피겨는 그나마 많이 봐왔기때문에 감은 잡고있었지만 이 작은걸 칠하려고하는데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릅니다. 아직 몇마리 안만들고 도료에 대한 감도 아직 제대로 못잡아서 실력은 아직 밑바닥입니다만....
Commented by calgar at 2009/09/15 05:34
비슷한 일로 돈을 지불받고 또 그것을 업으로 삼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딱딱 맞아 떨어지는 계산적인 일도 아닌데 시간에 맞춰서 끝낼수 있는 프로 다움, 또 열악한 국내 환경하에서도 꿋꿋이 계속 해나가고 있다는 점등이요.

아리아님의 모형 작품들은 저도 종종가서 눈팅하며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28미리 미니어처를 게임말이 아닌 모형의 한 장르로써 접하고 관심 가져 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분들이 많이 생기시고 또 그런 분들과 28미리 미니어처의 모델링과 페인팅 대해 같이 연구하고 의견을 나눌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네요. 전 영어 잘 못하거든요 ㅠㅠ
Commented by grailknigh at 2009/09/15 13:24
언제나 수고혀요....

하지만 이제는 MS08 소대같은 하이엘프를 본다거나 전원이 마 쿠베 전용기인 아미를 보기보다는 게임을 하는 당신을 보고 싶은데... ^^
Commented by calgar at 2009/09/15 21:09
게임을 안하겠다고 선언한 적은 없지만 마지막으로 주사위 굴려본지가 너무 오래되서 이젠 그냥 콜렉터일 뿐이죠.
Commented by at 2009/09/15 18:04
몇몇 부분에선 고요한 분노가 느껴지기도 하는 글이네요.

저도 요즈음엔 '나보다 잘 칠하는 사람들은 나와 나이차이가 열살 남짓 , 그 이상 난다. 나도 저 나이즈음 되면 저 이상으로 칠할 수 있다.' 라면서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계기로 반성 좀 해야겠네요. 으아
Commented by calgar at 2009/09/15 21:15
평소 생각 하던것들을 한번에 몰아서 내뱉다 보니 감정적이고 다소 억지스러운 느낌도 있죠.

원래 주변에서 맴돌며 말로만 주절거리는 사람들이 타겟이었는데 정작 열심히 칠하는 분들을 부정하는 듯한 글이 되버렸어요.

그리고 반드시 실력이 경력에 비례한다고 볼수는 없어요. 이제 스무살 된다는 어떤 페인터가 경력10년은 될거 같은 작품들을 쏟아내는 경우도 봤고

당장 저는 칠해온게 몇년인데 별다른 발전이 없고요. ㅎ
Commented at 2009/09/15 18:2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algar at 2009/09/15 21:26
이런 사소한 글에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이 하시는 말씀은 항상 깊게 새기고 있어요.
Commented by 터미베어 at 2009/09/17 15:26
제 마음속의 페인팅 히어로 칼가님..
하지만 저는 붓 컨트롤도 안되는 뉴비인지라...
Commented by lizender at 2009/09/22 01:4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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